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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2편, 모든 역사에는 세가지 관점이 있다. 나의 관점, 타인의 관점, 그리고 진실 본문

기억 2편, 모든 역사에는 세가지 관점이 있다. 나의 관점, 타인의 관점, 그리고 진실

웃자땡글아 2024. 10. 2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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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리뷰

영화 컨트롤러(2011년/주연:멧 데이먼, 에밀리 블런트)를 보면 주인공의 인생을 설계한 조정국이 등장합니다.
주인공은 대통령이 될 운명이고 이 결과를 위해서 조정국의 신들은 주인공의 일거수일투족을 계획하고 실행시킵니다.
한 번의 실수로 주인공은 조정국에 대해 알게 되고 본인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고자 합니다.

신의 개입으로 선택된 인생을 살 것인가? vs 본인의 인생을 개척할 것인가?

아무래도 후자의 삶이 힘들 것 같음-이 느껴지죠?

기억 2에서는 본인이 선택한 데로 움직이고자 하는 주인공에게 의문이 생깁니다.
내가 선택한 결정이 아니라 우리 위의 누군가가 쓴 각본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의지와는 무관하게 말이죠.

무엇이 진실이든 르네는 오팔과 함께 계속해서 모험을 시도합니다.


남기고 싶은 문장들

p.55 <모든 역사에는 세가지 관점이 있다. 나의 관점 ,타인의 관점, 그리고 진실>


p.62~63 불교에서 말하는 차크라는 우리가 바깥 세계와 맺는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7개의 차크라가 있다.
회음부에 위치한 첫 번째 차크라는 지구와의 관계를 뜻하는 것이다. 성기에 위치한 두 번째 차크라는 육체적 쾌락과 생식에 관련된 것이다. 배꼽에 있는 세 번째 차크라는 가족이나 사물과의 관계를 말해주는 것이다. 심장에 있는 네 번째 차크라는 감정과 감각에 관한 차크라고, 목에 있는 다섯 번째 차크라는 타자와의 소통에 관한 차크라다. 미간에 위치해 제 3의 눈이라고 불리는 여섯 번째 차크라는 문화와 아름다움에 관한 것이다. 정수리에 위차한 일곱 번째 차크라는 영성, 그리고 시대와 우주 속에거 자신의 위치를 말해준다.


p.70 ...<의지와 무관하게> 라고 부른 것도 그런 맥락이에요. 이 마술이 당신의 고민을 이런 식으로 다시 질문하게 해요. 우리는 선택하는것인가?아니면 하나의 큰 장기판위에서 움직이는 장기짝에 불과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가?


p.71 ...우리는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지만, 실은 외부의 누구 혹은 어떤 것이 우리가 좋은 선택을 하도록 개입할 수도 있나는 거예요. ...우리<의지와 무관하게>말이죠. 이 말은 이집트에 가고 아틀란티스인등에게 조언을 해주겠다는 당신의 생각은 이미 달성된 시나리오의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죠.

우리가 이미 결말이 정해진 영화 속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미예요?

우리가 소설 속 등장인물과 같다는 의미예요. 매 순간 우리는 우리의 자유의지와 양심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한다고 믿지만 실은... 우리 위에 있는 작가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행동을 결정하고 있다는 말이죠.


p.108~109 70.므네모스:아난케
그리스 신화 속에 아난케는 운명의 여신이다. 그녀는 인간을 뛰어넘는 필연을 상징하는 신이다. 아난케는 자연과 물리적 현상, 논리, 신성의 세계까지 지배하는 필연의 힘인 탓에 그녀를 숭배하거나 원망하거나 동정을 구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그녀는 <반드시>라는 부사의 동의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서 아난케라는 신의 존재가 인간에게 체념을 강요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불평하거나 물살을 거슬러 헤엄치려 하지 말고 자신의 운명의 강에 몸을 맡기고 조화로운 방식으로 인간 공동체의 운명의 일부가 되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은 문제를 일으키는 신이라고 여겨 아난케를 좋아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무서운 모아라이 세 여신, 즉 클로토와 라케시스, 아트로포스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세 자매 중 클로토는 운명의 실을 뽑아내고, 라케시스는 실을 감고, 무자비한 아트로포스는 가위로 실을 잘라 죽음을 부여한다. 오르페우스를 숭배하던 사람들이 기원전 560년경부터 아난케를 온전한 여신으로 대접하며 함께 숭배하기 시작했다. 세계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원리임을 말해 주듯 아난케라는 이름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눈에 잘 띄는 돌에 새겨져 있다.


P. 119 아틀란티스인들은 지금 바다 위에서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을 배가 아니라 자신들의 언어로 <보호되고 보호해야 하는 장소> 를 뜻하는 방주라고 부르기로 한다. 범선라-네에가 아닌 방주 라네에를 입에 올리다 어느새 줄임말인 <네에의 방주> 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다.


p.122~125 9. 므네모스: 역사기록의 오류들
우리가 반드시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역사적 오류의 예를 몇 가지 들어 보자.
선천적 시각 장애인이었던 호메로스가 ‘오디세이아‘를 썼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는 음유시인, 다시 말해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읊는 사람이었다. 그의 숭배자들이 ‘오디세이아’를 집필했을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통속에서 살았다고 알려진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나무통이 아니라 항아리에서 지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아테네어는 아직 나무통이 없었기 때문이다.
클래오파트라는 이집트인이 아니라 그리스인이다. 그리스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일원이었던 클레오파트라는 주로 그리스어를 사용했고, 옷을 입고 꾸미는 것도 그리스식이었다.
베르킹케토릭스가 실존 인물이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그의 존재는 그와 철천지원수 사이였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베르킹케토릭스는 카이사르가 자신의 영웅적 면모를 부각하기 위해 여러 갈리아 부족장들의 특성을 섞어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카이사르는 갈리아인 중에서 아무나 한 명을 잡아 베르킹 게토릭스라고 한 뒤 로마로 돌아가 개선식에서 그의 시신을 군중들 앞에 보여주었을 것이다.
아틸라는 교양이라곤 없는 무식한 왕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포함한 10개 언어를 구사했고, 음악과 시, 춤과 같은 예술분야에도 흥미를 느끼고 즐기는 사람이었다.
샤를마뉴 대재가 학교를 만들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읽고 쓸 줄 몰랐던 그는 폭력적인 군인에 가까웠다. 그에 대한 잘못된 신화는 모두를 위한 학교의 필요성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1200년대를 살았던 프랑스인들은 1600년대의 프랑스인들보다 훨씬 자주 몸을 씻었는데, ‘에튀브’라고 불리던 대중목요탕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용자들이 나체 상태에서 성적욕구를 느낄 수 있다고 판단한 교황 때문에 이 공종목욕탕은 중세말에 가서 사용이 금지되어 결국 폐쇄되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에게 영감을 준 것은 그의 얼굴에 떨어진 사과가 아니라 고양이 한 마리였다. 사과이야기는 낙하 운동의 원리를 기억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볼테르가 지어낸 것이었다.
<기요틴>이라고도 불리는 단두대의 발명자는 조셰프기요탱이 아니라 앙투안루이라는 이름을 가진 의사였다. 기요탱은 사형수들의 고통을 줄여 주기 위해 교수형이나 도끼를 사용한 참수 대신 보다 <인간적인> 처형 방식인 단두대를 채택해 줄 것을 의회에 요청했다. <루이제트>로 불린 단두대가 처음 등장했을 때, 처형이 순식간에 끝나자 구경꾼들은 재미가 없다며 고함을 지르고 야유를 보냈다. 기계에 흥미가 많았던 루이 16세는 단두대에 사선 칼날을 달아 효율을 높이는 방법을 직접 고안해 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단두대위에서 최후를 맞았다.
알려진 것과 달리 군주제 몰락에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바스티유함락이 아니다.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에는 일반수 7명만이 복역 중이었다. 감옥을 습격한 시위대의 대부분은 총기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우다가, 혹은 조작미숙으로 총구의 방향을 자기 얼굴로 향하게 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 나폴레레옹이 대중의 추앙을 받았던 이유는 그가 언론의 자유를 금지한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는 자신이 전투에서 세운 무공을 직접 글로 쓰거나 기자들을 불러 받아쓰게 했다. 나폴레옹은 <역사는 누구나 동의하는 거짓말들을 모아놓은 것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나폴레옹 1세와 정반대의 처지였던 이가 바로 나폴레옹 3세다. 그는 당대의 유명작가 빅토르 위고에게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비난의 포화를 맞는 바람에 대중에게 나쁜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 통치자로서는 최초로 보통선거에 의해 선출된 군주였다. 그는 철도와 도로망을 대대적으로 확충해 근대적인 경제발전의 기틀을 다졌고, 은행의 탄생과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금융시스템의 도입에도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스스로 자신의 귀를 절단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여러 사람의 증언을 맞춰보면 그는 친구인 고객과 만취 상태에서 싸우다가 이 신체기관을 잃어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노벨수학상이 없는 이유는 알프레드노벨의 부인이 수학자와 바람이 났기 때문이라는 세간의 설이 있다. 그런데 노벨은 평생을 독신으로 산사람이었다. 그가 노벨수학상을 만들지 않은 것은 수학을 지나치게 추상적인 학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월트 디즈니가 딸을 즐겁게 해 주려고 미키 마우스라는 캐릭터를 그렸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밑에서 일하던 어브 아이웍스라는 애니메이터의 공을 독차지했을 뿐이다.


p.197~198 93.므네모스: 판도라의 상자
… 판도라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 <판도라의 상자> 항아리를 열자 질병과 노화, 전쟁 등 인류의 모든 문제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시간이 흘러 판도라는 에피메테우스와의 사이에 딸을 하나 낳아 피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거인 이아페토스와 클리메네 사이에서 난 에피메테우스와 프로메테우스 형제는 물론 판도라 역시 티탄족이었으니, 에피메테우스와 판도라 사이에서 태어난 딸 피라도 당연히 거인이었다. 피라는 프로메테우스의 아들인 데우칼리온과 결혼했다. 이번에도 인간을 향한 분노가 폭발한 제우스가 포세이돈을 시켜 인류를 전멸시킬 대홍수를 일으키게 했다. 이 재난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대홍수를 미리 알고 바닷물이 지구를 뒤덮기 직전에 파르나스 산으로 몸을 피한 피라와 데우칼리온 둘 뿐이었다. 피라와 데우칼리온은 이때부터 자갈을 모아 던지며 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피라가 뒤로 던진 돌은 여자의 형상으로, 데우칼리온이 던진 돌은 남자의 형상으로 변했다. 세상은 이전처럼 다시 인간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리스어로 <라오스>는 돌을 뜻하기도 하고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이 단어 속에 이미 피라와 데우칼리온이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돌을 던져 인간을 창조했다는 이야기가 상징적으로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판도라의 딸 피라와 프로메테우스의 아들 데우칼리온이 지나가는 길마다 사람의 무리가 형성됐다고 그리스 신화는 전하고 있다.


p.213
이렇게 바퀴는 돌고 또 도는 거야. 때로는 시간이 약이야. 시간이 가면 상황은 변하게 돼 있으니까.
밑에 있던 건 올라가고 위에 있던 건 내려오지.


p.244 104. 므네모스: 이집트 신화
이집트 신화에 따르면 태초에 게브와 누트가 있었다. 게브는 대지, 과일과 나무, 광물을 관장하는 신이었다. 누트는 하늘의 여신, 다시 말해 비와 구름과 별을 부리는 신이었다. 두신은 불가분의 존재였다. 통치 개념을 만든 게브는 최초로 이집트의 왕이 됐다. <파라오>는 <케브의 왕좌>를 뜻하는 말이다. 레브는 턱수염을 기르고 붉은색관을 쓴 지인의 모습으로 파피루스에 그려져 있다. 오른손에는 환생의 상징인 잉크를 들고 왼손에는 번영의 상징인 거위를 들고 있다. 게브는 기억의 신으로도 추앙받고 있다. 그는 인간 역사의 기록을 맡은 필경사들의 손을 움직여 주는 신으로도 묘사된다.


P. 283 110. 므네모스:우블리에트
중세 프랑스에는 우블리에트라는 특별한 용도의 방을 지하에 가지고 있는 성체들이 흔했다. 지하에 구덩이처럼 파놓은 이 우블리에트는 바닥문을 열고 사다리나 밧줄을 내려 드나들게 돼 있었다. 물론 수감자가 안에 있을 때는 사다리와 밧줄을 치워 위로 올라오지 못하게 했다. 일종의 지하 감옥으로 사용된 이곳에는 문이나 창문이 없었고, 당연히 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바스티유와 피에르퐁성에서 다수의 우블리에트가 발견되었는데, 벽에 남겨진 낙서들을 통해 그곳이 단순히 지하실이나 지하 저장고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p.312 114. 므네모스: 미의 변천사
미인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옛날에는 출산이 쉬운 큰 엉덩이와 젖이 잘 나오는 큰 가슴이 미인의 첫 번째 기준이었다. 유명한 조각상인 레스퓌그의 비너스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구석기시대의 비너스는 엉덩이가 유난히 크고 가슴이 풍만한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큰 엉덩이가 미의 기준이었다는 사실은 고대 미인을 그린 대부분의 그림에서 확인된다.
시대는 다르지만 17세기 화가 페테르 파울 두벤스도 비슷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의 화폭에 담긴 주인공은 주로 뱃살이 늘어진 알몸의 여성들이었다. 라틴 민족은 북유럽 야만인들의 특징이라고 여겨 금발과 파란 눈을 아둔함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서양에서는 소위 우윳빛피부를 순수함과 부의 상징으로 여겼다. 흰 피부는, 피부를 태우며 들에서 일하지 않아도 되는 윤택함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발이 작은 여성을 미인으로 여겼다. 페루에서는 다리에 털이 난 여성이 인기가 많았는데, 원주민 혈통이 아닌 스페인 혈통의 증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미인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1900년대 테헤란에 살았던 이란 공주살타네 카자르다. 그녀는 키가 작고 발목이 굵었으며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양말을 신었다. 또 엉덩이 위로 치마 밑단이 꽃부리처럼 활짝 펼쳐지는 (프로방스 식탁보와 무늬가 비슷한) 발레 치마를 즐겨 입었다. 얼굴에는 콧수염이 거뭇했고 눈썹은 막대기처럼 짙었던 그녀는 동시대 남성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페르시아 귀족남성 46명이 그녀에게 청혼했는데, 그중 13명은 거절당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는 재능 있는 시인이자 앞선 생각을 하는 신여성이었다.


p. 350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존재하고, 모든 현명한 결과에는 현명한 원인이 존재한다. 원인의 힘이 결과의 위대함을 결정한다.>


p. 382
모르는 사람에 대한 성급한 판단은 우위를 점하고 싶은 조바심에서 나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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